• 2023. 1. 30.

    by. 새우깽

    예상외로 흥행 실패한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이 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이 지난 12월 2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23년 1월 현재에도 '오늘 대한민국 TOP 10' 영화에 노출될 만큼 대한민국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유명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5점 만점을 줄 정도로 서스펜스 로맨스 영화물로는 거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를 받는 <헤어질 결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수 189만(손익분기점은 120만 명)에 그쳐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영화관에서 <헤어질 결심>을 봤을 때,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연출된 영화를 보면서 이제는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정점을 찍었구나 감탄을 마지못했는데, 이렇게 기대에 미치지 못한 흥행성적을 거둔 데에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스타일리시한 장르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박찬욱 감독이 누누이 자신은 상업 영화를 만드는 상업 영화감독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OTT 시대, 강렬한 영화적 경험을 원하는 관객

    <헤어질 결심>은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엄청난 명예를 가지고 있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다. 그 이유는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성향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코로나 이후 OTT가 급속도로 우리 삶에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강렬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류의 영화가 아닌 이상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은 영화 티켓값 상승까지 겹쳐 가성비를 추구하는 관람객들이 검증된 재미는 보장하는 영화가 아닌 이상은 굳이 큰돈을 들여서 영화관까지 꾸역꾸역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동기간 <헤어질 결심>보다 먼저 영화관에서 상영했고 큰 흥행 성적을 거둔 <탑건>과는 대조되는 결과다. <탑건>같이 스토리가 단순하고, 명쾌하고 시각적인 재미가 보장된 영화이어야만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면에 박찬욱 감독이 아무리 자신의 언어로 자신은 상업 영화감독이라고 강조한 들, 대중은 그를 예술성 짙은 영화를 연출하는 거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 또한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관객은 선뜻 이런 면에서 거장의 이름 만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노고를 감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일부 <헤어질 결심> 마니아층은 아쉬운 흥행 성적을 보전하기 위해 N차 관람(같은 사람이 여러 번 같은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권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관전 포인트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며 펼쳐지는 스릴러 로맨스물이다. 사건의 정황상 이는 투신이 아닌 타살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하던 해준은 서래를 미행하며 남몰래 수사를 하지만 그녀를 탐문하는 가운데 애매하게 해석할 수 없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빼앗긴다. 이러한 해준의 마음속에 드는 의심과 관심을 아름다운 영화적 기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세련미를 한층 높였다. 미장센의 대가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 장면 하나하나 군더더기가 없어 이러한 세련된 연출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면 하나하나가 함축하고 있는 분위기와 시적인 표현 때문에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단순히 예술성만을 구비한 게 아니라, 스토리 자체가 주는 긴장감 또한 관객을 조여 오기도 한다.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참고로 나는 <헤어질 결심>을 2번 정도 보았는데, 여러 번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또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해석하는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결말을 다 보고 난 뒤에 다시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인물들이 치는 대사 하나하나가 매우 심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각각의 인물들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역할의 비중을 막론하고 대사 하나 하나 속에 각 인물이 어떤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게 됐다. 특히, 영화 내내 큰 비중은 없었지만 해준의 아내가 치는 대사가 두 번째 관람에서야 무척 새롭게 들렸다(해준은 서래에게 정신이 팔려 온통 딴생각만을 하고 있는데 그 반면에 해준의 아내에게도 어떠한 사건들이 계속 진행 중이었던 거다. 개인적으로 해준의 아내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영화를 통해 신선한 느낌을 얻고 싶다면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헤어질 결심>을 바로 찾아보길 바란다. 한 번이 아니라 N차 관람을 추천한다.